친구의 이름은 ‘춤’

  나에겐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걸어온 친구가 있다. 이름은 조금 특별하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바로 ‘춤’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취미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잠깐 흥미로 끝나는 활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춤은 그 이상의 존재이다. 나를 성장시켜 주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다.

  처음 춤을 만난 건 유치원 재롱잔치 연습 시간이었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 보니 점점 흥미가 생겼다. 어쩌면 그 친구도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살짝씩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춤과 진심으로 마음이 통하기 시작한 순간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던 그때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와 웃음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선생님의 격려, 가족들의 자랑스러운 눈빛,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떨림은 지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그때가 춤이 내 안에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말을 걸어온 순간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 처음으로 댄스스쿨 문을 열게 되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음악의 리듬과 활기찬 분위기에 이끌려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스며들었다. 등록과 동시에 기초 스텝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힙합’과 ‘재즈’, 두 친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힙합은 자유로운 친구였다. 정해진 틀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투와 장난기 가득한 몸짓을 가졌지만 그 친구와 함께할 때면 내 마음은 누구보다 솔직해졌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친구였다. 반면 재즈는 조용하고 섬세한 친구였다. 부드러운 말투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다가도 때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안의 강인함을 끌어내 주었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깊은 마음을 가진 친구였다. 그렇게 두 친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표현의 즐거움을 알려 주었고 나는 그들과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나 자신을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매년 12월이면 스쿨에서 열리는 발표회가 있었다. 반짝이는 조명이 켜진 넓은 무대, 수많은 관객의 시선, 그리고 전문 카메라맨까지—그 순간 나는 진짜 댄서가 되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으로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요동쳤지만 음악이 나오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순간은 춤이 내 손을 잡고 이끌어 준 느낌이었다. 그 순간 단순히 재미가 아닌 벅찬 기쁨을 느꼈다. 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춤을 단순한 친구가 아닌 더 소중한 삶의 일부로 느끼게 되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댄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춤과 함께하고 있다.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리듬에 맞춰 호흡을 맞추는 경험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춤과의 인연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보다도 깊고 강하게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정말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예전에는 낯을 가리는 조용한 아이였던 내가 춤과 함께하는 동안 먼저 말을 걸고 내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춤은 언제나 나에게 용기를 줬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든든한 벗이 되어 주었다. 또한 무대 위에서 춤과 함께할 때면 춤은 나를 단단하게 다독여 주었다. 때로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떨리는 내 손을 잡아 주고 실패했을 때는 위로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더 강해졌고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춤과 보내는 시간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대화의 시간이었다. 춤은 나에게 음악이라는 언어로 감정을 전해주었고 내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금도 춤과 함께 처음 무대에 올랐던 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춤과 앞으로도 계속 함께 걷고 싶다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몰라도 춤이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춤은 지금보다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로 지켜봐 줄 것이다.

마츠자키 나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