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석양과 친구의 목소리

  강물은 금빛으로 물들었다가 서서히 군청색으로 변해 갔다. 볼을 스치는 바람은 낮의 열기를 약간 남긴 채, 가을의 시원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자전거 종소리가 섞여 한강의 흐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강가 카페에서 나는 갓 내린 커피 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았고, 군밤의 달콤한 향이 손끝까지 전해지며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내가 서울을 찾은 것은 이날이 두 번째였다. 낮에는 번화한 시장을 걸으며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장을 보고 즐거워했지만,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발길은 자연스레 강가로 향했다. 가이드북에서 본 한강은 도심 속 넓은 물줄기였지만, 실제로 보니 상상보다 훨씬 평온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물결 위로 반짝이는 햇빛과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그날 나는 한국 친구 지은과 만나기로 했다. 그녀와는 1년 전 일본에서 열린 한일 교류 행사에서 만났다. 웃을 때 살짝 고개를 갸웃하는 버릇이 있고, 무언가를 진지하게 말하려 하면 이마에 주름을 잡는다. 그런 모습이 나는 좋았고, 이야기 내용보다 그녀의 반응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늦었지?” 지은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숨을 헐떡이며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오늘 날씨 좋다. 해 질 녘이 예쁘니까, 조금 걸을까?”

  그렇게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시장에서 산 군밤을 나눠 먹고, 길가에서 파는 떡볶이 냄새를 맡으며 웃기도 했다. 강가 벤치에 앉았다가 다시 걷는 동안, 침묵조차 한강의 잔물결처럼 편안했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느낀 긴장감과 달리 지금은 마음속에 따뜻한 안도감이 번졌다.

  잠시 강 위로 바람이 달리며 내 머리카락을 스쳤다. 지은은 살짝 그것을 치우며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라가 달라도 같은 하늘을 보고 있구나.”

  그 말이 나오기까지 지은도 여러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평소 일본과 관련된 뉴스나 역사 이야기를 접하며 문화적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곁에 있고, 함께 이 석양을 바라보는 순간, 그 간격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지은은 서로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순간과 감정을 소중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서 차분한 감동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걷다 보니 지은이 대학 이야기, 가족 이야기, 일상 속 작은 일들을 조금씩 꺼냈다. 동생이 시험공부로 바쁘다는 것, 어머니가 담그는 김치 맛이 해마다 조금씩 변한다는 것, 길거리에서 파는 작은 음식들을 즐기는 이야기, 앞으로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거의 지자 강물은 군청색으로 물들고, 도시의 불빛이 물 위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빌딩의 네온과 섞이며 흔들리는 빛은 마치 우리 사이에 흐르는 두 문화가 조금씩 섞여 하나의 따뜻한 색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순간이 오래 기억될 것임을 알았다.

  헤어지며 지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일본에서, 같은 하늘을 보자.”

  그 약속은 종이에 쓰거나 악수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뒤돌아 한강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물 위에서 잔잔히 흔들리며 두 문화가 조금씩 스며든 따뜻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과 지은의 말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쉬었다.

  석양의 한강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어 조용히 흐르는 우정,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수많은 이야기와 웃음의 가능성까지 담긴 장소였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 일본에서 같은 하늘을 볼 때 우리는 또 어떤 작은 순간들을 함께 나누게 될까.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럽게 물결쳤다.

가모하라 시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