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에 또 만나자

  곧게, 그저 앞으로 이어진 길. 그 길가의 돌에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이름들은 모두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이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숨이 조금 막혔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 나는 그 하나하나를 눈으로 따라갔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인데도, 어쩐지 그 얼굴들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2025년 여름. 나는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열린 ‘한일 고등학생 교류회’에 참가했고, 그 프로그램에서 전쟁기념박물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버스 안은 웃음소리와 장난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박물관 안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차가움이 몸에 달라붙는 듯했다.

  전시실에는 실제로 사용되었던 군복과 총, 전차, 전투기까지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군복에 배어 있는 피는 지금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다 해도 다시 번지지 않는다. 한때 굉음을 내며 달렸던 전차 역시 이제는 차갑고 단단한 쇳덩어리로 잠들어 있었다. 그곳에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역사의 침묵이 있었다.

  그때, 정적을 깨뜨릴 듯 갑자기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 오늘 점심은 냉면 먹고 싶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왠지 나까지 웃게 되는 꾸밈없는 밝음. 그 순간, 내 안에서 두 개의 시간이 거세게 충돌했다. 평화로운 현재와 전시된 비참한 과거가 같은 장소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이상함. 아이가 소망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지금의 행복과, 그런 너무도 당연한 소망조차 빼앗긴 채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마음. 아이의 목소리는 평화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시간이 잔인할 정도로 과거의 기억을 흐려지게 만든다는 현실도 깨닫게 했다.

  박물관을 나오니 숨이 막힐 만큼 더웠다. 멀리서 매미 소리도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6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전쟁과 식민 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겪고, 수없이 갈등과 마찰을 반복해 온 두 나라가 이제는 고등학생들끼리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버스 안에서 함께 웃고 있던 우리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역사’의 저편에 있었던 듯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같은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고,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고 있다. 6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렇게까지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구나,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실제로 이번 교류 프로그램에서의 만남은 나에게 큰 발견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언어의 벽 때문에 긴장했지만, K-POP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화는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해서, 미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해 주었다. 또 어떤 학생은 “서로의 나라 음식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하며 김밥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다. 그들 안에는 편견도 적의도 전혀 없었고, 그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물론 과거의 상처가 쉽게 아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갈등은 지금도 때때로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눈을 마주하고, 서로의 문화와 마음을 알려고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분명히 미래로 가는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나는 실감했다. 전쟁기념박물관에서 본 과거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들었던 아이의 목소리와 이번에 만난 한국 친구들의 웃음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미래의 상징이기도 하다.

  1주일간의 교류 캠프가 끝난 날, 작별 인사를 했다.
  “바이바이! 또 만나자!”
  한국 학생들이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고.

  문득, 돌에 새겨져 있던 그 이름들이 떠올랐다. 과거의 슬픔도, 지금의 웃음도 모두 이어져 있다.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평화를 받아들여,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국교 정상화 100주년에 만나자.”

히라타 다이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