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만난 지 6년, 지금의 나에게
한국어를 배운지 6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때충동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내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내가 처음 한국어를 배운 것은 6년 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꿈도 목표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나 내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제2외국어를 선택할 때도 나는 그냥 쉬워 보여서 한국어로 했다.
1학년 때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이었다. 의욕이 없었던 나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공부를 안 했던 나는 당연히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고 교수님 눈 밖에 나기까지 했다.
주변에 친구들은 한국 아이돌들을 열정적으로 좋아했다. 무언가에 푹 빠져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여름방학도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시간이 많았던 나는 교수님께 혼나는 게 무서워서 한국어 복습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로만 접근하려니 재미도 없고 졸음만 쏟아졌다. 일본 밴드의 오타쿠인 나는 한국 밴드 음악으로 공부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찾아보았지만 한국은 일본만큼 밴드가 많지 않고 나오는 곡들은 거의 멜로 노래였다. 노래는 좋았지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나 자신과의 갈등을 노래하는 곡이 취향인 나에게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한국 사람들이 일본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알고 싶었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나 감동을 한국어로 공유하고 싶다.
이 단순한 호기심이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남은 여름방학 기간동안 공부했다.
방학이 끝나고 치른 첫 시험 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친구들도 교수님도 놀랐지만 가장 놀란 건 내 자신이었다. 나도 무언가에 몰입하면 이렇게 성장 할 수 있구나 하며 이순간이 처음으로 나의 가능성을 믿게 된 순간이었다.
원래는 영어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국어에 완전히 빼앗겨 있었다. 주변에서는 취업을 위해서라도 영어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했고 나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어서 괴로웠다.
그럼에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한국을 더 알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의 소리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설령 이것이 현실 도피로 보일지라도 지금 여기에서 내 감정을 부정해 버리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누구보다 공부하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에 책임감을 갖고 싶었고 부모님께도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그때까지 승부욕이라는게 하나도 없었던 내가 1등이 되고 싶다고 바랬다. 감기에 걸려도 항상 책상 앞에 앉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어학당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토픽시험에서 목표했던 점수도 거머쥐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점이었던 일본 밴드를 알리고 싶다는 소망도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이룰 수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한국 가수들의 공연에 가고 좋아하는 가사들를 서로 공유했던 시간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하지만 귀국 후 취업 준비를 하는데 있어서 그 경험이 곧바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솔직히 너무 속상하고 분했다. 어느정도는 예상했지만 사회는 결국 한국어보다 영어를 원한다고 느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해진 내 자신만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그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취업 활동이 끝나자마자 나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한국이라는 글자가 닿는 모든 것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타대학에서 열린 한국 문학 강연회를 홀로 찾아갔고, 4학년인데도 타학과의 ‘한국경제론’ 수업을 이수했다. 스스로 각오를 다지며 계속 앞만 보고 달렸다. 필사적으로 몰두했던 그때의 나를 어떻게든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 문학 강연회에서 서평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전까지 독서 습관이 없었던 내가 책 읽는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되고 서점을 내 집 드나들듯 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경제론 수업은 전문 지식이 없던 나에게는 어려운 수업이었지만 이상하게 교수님이 가끔씩 해주시는 역사나 문화 같은 잡담에 강하게 끌렸다.
나는 더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을 알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기심은 계속해서 부풀어 올랐고, 온갖 장르의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말에 책을 읽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수업을 해주셨던 교수님과 수업을 통해 친해진 한국인 학생은 졸업 후에도 따로 만날 만큼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넘어, 예상치 못한 만남과 깨달음을 반복하는 사이에 나는 상상치도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이나 남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지, 그런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나만이 느끼는 작은 ‘충동’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결국 나를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나는 평소에 서투르고 실수도 많다. 내 마음에 너무 솔직한 성격 탓에 나중에 후회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발버둥 치며 나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했던 그 시간이야말로, 한국을 만나 얻은 가장 큰 보물이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마다 내 등을 밀어줄 사람은 틀림없이 순간의 작은 충동을 믿고 거침없이 달려 나갔던 그 순간의 나다.
하마나카 이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