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의 흔적
비가 그친 뒤의 운동장은 폭우가 휩쓸고 간 폐허 같았다. 패인 진흙을 피해 가장자리를 걷던 나는 한가운데 고인 물웅덩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흙먼지와 부유물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탁한 물이었다. 그러나 그 얕은 웅덩이 안에는 푸른 하늘이 고요히 잠겨 있었다.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을 깊이였지만, 그 표면은 심연처럼 허공을 품고 있었다. 나는 발 밑으로 떨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흔히 인연을 아름다운 우연이라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우리는 과연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의 실체가 아니라, 그의 표면에 비친 자신의 이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물웅덩이는 진흙과 흙탕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선을 붙드는 것은 언제나 그 위에 내려앉은 하늘이다. 우리는 그 위에 비친 자신의 갈망을 운명이라 부르며 사랑이라 착각한다.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웅덩이를 가로지르면 수면은 갈라진다. 장력이 무너지고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검은 흙이 소용돌이치며 떠오른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품고 있던 물은 순식간에 탁해지고, 허공은 조각난 채 사라진다. 남는 것은 진흙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다. 감추어 둔 상처와 욕망이 어느 날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리는 그것을 배신이라 부르며 돌아선다. 그러나 배신당한 것은 상대에게서가 아니다. 깨진 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라, 그 위에 내가 비추어 두었던 하늘이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결국 상대가 아니라, 그에게 기대어 완성한 자신의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태양은 웅덩이의 물을 조금씩 말려 버린다. 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여운도, 빛나는 추억도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갈라진 진흙뿐이다. 메마른 표면은 거북의 등껍질처럼 금이 가 있고, 그 균열 하나하나는 한때 그곳을 채우고 있던 물의 무게를 견뎌 낸 흔적이다. 물은 떠났지만, 하중은 흙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 나는 오래도록 그 균열을 내려다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금은 제멋대로 갈라진 게 아니었다. 물이 머물렀던 방향과 흙이 버텨 낸 힘의 흐름을 따라, 저마다 다른 각도와 깊이로 몸을 찢어 놓고 있었다. 넓게 벌어진 틈도 있었고, 손톱 끝만큼 가느다란 실금도 있었다.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은 없었다. 같은 비를 맞고도 같은 상처를 갖지 않는 사람처럼, 같은 물을 품었던 흙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문득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오래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기억보다 먼저 구조가 변한다. 이전과 같은 모양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관계는 끝나도 그것이 남긴 하중은 마음의 결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잊었다고 말하면서도, 문득 낯선 계절의 냄새나 오래된 말 한마디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을 느낀다. 떠난 사람은 더 이상 곁에 없지만, 그가 남긴 무게는 이미 우리의 형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균열은 무너짐의 흔적이 아니라, 한때 무언가를 온전히 품어 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사랑은 환영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환영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균열을 받아들이는 일인지 모른다.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형태의 변화를 자기 삶의 일부로 품는 일이다. 진흙은 더럽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늘은 눈부시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끝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서로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 빛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형태의 변화일 것이다. 상처는 회복되지 않아도 삶은 그 모양으로 나아간다. 바람이 불었다. 마른 흙먼지가 갈라진 웅덩이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는 더 이상 푸른 하늘도 흰 구름도 없었다. 대신 한때 무언가를 품었던 땅의 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신발끈을 다시 묶고, 갈라진 진흙 위를 걸어갔다. 발 밑에서 메마른 흙이 부서졌다. 그 소리는 사라진 물의 소리가 아니었다. 한때 서로를 견디고, 서로의 무게를 받아냈던 시간의 소리였다.
가노다 요시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