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괜찮아
“아직 괜찮나?”
면회를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면, 아버지는 시계를 보기 시작하신다.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은 집에서 차로 편도 약 27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왕복하면 55킬로미터쯤 된다. 나는 여러 일을 병행하고 있어서,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도 매일 다르다.
병원 주차장은 1시간까지 500엔이고, 1시간이 지나면 200엔씩 요금이 붙는다.
아버지는 내가 주차비를 내지 않도록 500엔짜리 동전을 잔뜩 넣은 지갑까지 따로 마련해 주셨다.
사실 주차비는 내게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 편하시도록 그 지갑을 그대로 받아 썼다.
나는 아버지가 주차비를 걱정하시는 줄 알았다.
“응, 아직 괜찮아. ◯시 되면 갈게. 그때까지는 여기 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매일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온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왕복 55킬로미터. 병원을 나와서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러니 분명 주차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 때문에 내가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것도 마음에 걸리시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 왔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것이 있다.
‘빨리빨리’
한국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는 그 속도감이 조금 낯설었다. 결정한 뒤에는 망설이기보다 바로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도 그 안에 있었다. 나에게는 ‘이렇게까지 빨리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그 속도에 익숙해졌다. 나 역시 한 번 정한 일은 곧바로 시작했고,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려고 했다.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시간이 걸리면 ‘늦네. 더 빨리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고, 일본에 돌아온 뒤에는 ‘한국이었다면 훨씬 빨리 끝낼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낯설게 바라보았던 속도가 그대로 내 안의 잣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을 계기로 그 잣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불 위에 놓인 아버지의 손이 예전보다 작아 보인다. 링거를 맞은 자국이 파랗게 남은 손목은, 어렸을 때 팔씨름을 하며 붙잡았던 그 손목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이제는 한 손으로 다 감쌀 수 있을 만큼 가늘다.
아버지의 손을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아버지를 뵐 수 있을까.
앞으로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내 손의 온기를 나눠 드릴 수 있을까.
병원에서 남은 몇 분과 인생에서 남은 몇 년이 어느새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그 무게는 다를지도 모른다.
일하는 한 시간과 그저 기다리는 한 시간.
그리고 아버지 곁에 앉아 있는 한 시간.
시곗바늘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나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언젠가부터 같은 의미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뵈러 55킬로미터를 달리는 시간.
병실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재활을 위해 손을 잡고 병동을 두 바퀴 도는 시간.
아프신 데를 주물러 드리는 시간.
“이제 갈게”라고 말하기까지의 시간.
그래서 아버지가 “아직 괜찮나?”라고 물으시면,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그 말에 담긴 뜻을 생각하게 되었다.
주차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일지도 모른다.
일하고 있는 나를 걱정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버지 때문에 내가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것을 미안해하시는지도 모른다.
진짜 속마음은 아버지만 아실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아직 괜찮아”
나는 오늘도 돌아갈 시간을 아버지께 말씀드린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는 아버지 곁에 있다.
“아직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나는 잠시 시계를 보지 않는다.
요시다 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