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짜장면
그날은 잔뜩 흐린 날이었다. 3월이라고는 해도 서울은 아직 매서운 추위가 남아 있었고 벚꽃이 피려면 한참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아침이었다.
6개월간의 어학연수를 마친 나는 오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같은 하숙집 옆방에 살던 나보다 일곱 살 어린 재일교포 남동생이 아침부터 복도를 분주하게 오가다가 문을 열고 졸린 얼굴로 물었다.
“엄마, 몇 시에 나가?”
“두 시 버스 탈 예정이야.”
그는 연상인 나를 “엄마” 라고 부르곤 했다.
나는 그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샤워실에서 가져온 내 린스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거 일본에서 가져온 건데 꽤 비싼 거야. 줄게.”
그는 “와, 고마워!” 하며 받아 들고는 문 뒤로 손을 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짐 내릴 때 불러. 내가 도와줄게.”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휴대전화 화면이 켜져 있었다. 문자가 두 통 와 있었지만 답장은 하지 않고 마지막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열한 시 반이 조금 지났을 무렵, 노크 소리가 났다. 옆방 친구였다.
“엄마, 밥 먹으러 가자. 한국생활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
잠시 생각한 끝에 나는 대답했다.
“짜장면.”
“알았어.”
그는 계절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반바지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먼지가 조금 날리고, 아직은 쌀쌀한 3월. 서울에서 맞는 첫 번째 3월이었다.서울의 벚꽃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하숙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중국집에 들어갔다. 사람 둘이 스쳐 지나가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가게였다.
“어? 여기 배달 전문점 아니야?”
내가 묻자 그는 말했다.
“그랬나? 한번 물어볼게.”
잠시 후 환하게 웃으며 돌아왔다.
“안에서 먹을 자리는 없는데, 여기 의자 꺼내서 먹어도 된대.”
배달 준비를 하는 작은 카운터 옆에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 두 개가 포개져 있었다.
그는 능숙하게 의자를 꺼내 앉았다.
짜장면은 금세 나왔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테이블이 없어서 단무지는 배달용 카운터 위에 놓였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단무지를 짜장면 위에 휙 쏟아 넣은 뒤 빈 접시만 돌려놓았다. 나는 하얀 플라스틱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소스를 면에 천천히 비볐다.
“역시 마지막 식사는 짜장면이지. 엄마는 뭘 좀 안다니까.”
반바지 차림의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점심 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는 골목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학당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오가 지나자 가게 전화가 갑자기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고, 중국어 억양이 섞인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잘 먹었다. 마지막 식사를 테이블도 없이 길을 바라보면서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웃자 그도 따라 웃었다.
“그래도 좋은 추억 됐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살게. 일본에 조심해서 돌아가.”
안쪽으로 들어가 계산을 마친 그는 점원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웃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의 익숙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그의 그런 밝음 덕분에 몇 번이나 힘을 얻었는지 문득 떠올랐다.
“매일 아침 깨워 달라고 해놓고 막상 깨우러 가면 한 번도 제대로 일어난 적 없었잖아.”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 짐을 아래층까지 내려다 주었고,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와 주었다.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왠지 더 추워 보였다.
버스가 도착하자 그는 짐을 짐칸에 실어주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고마워. 앞으로 짜장면 먹을 때마다 오늘이 생각날 것 같아.”
“좋잖아. 좋은 추억이네.”
“또 보자. 다음엔 도쿄에서.”
“응.”
버스 계단을 올라 맨 뒤 자리에 앉았다. 그는 한 손은 반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다른 한 손만 흔들고 있었다.
안녕, 서울.
입안에는 아직도 짜장면의 기름진 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세키야 마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