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새로운 아빠는 한국 사람이구나!”

  나의 재혼 소식에 가슴 설레어 하던 딸. 어느 여름날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외국인이 아빠가 된다는 신기한 감정도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럼 한국에 가서 인스타에 올라온 한국 화장품을 많이 살 수 있는 거네.”
  “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데.”
  “한국 가게에서 직접 사고 싶어! 좋아! 한국에 대해 공부해야지.”
  아무튼 이것저것 공부를 시작한 것 같다.

  “서울에는 네 개의 문이 있대.”
  “한글은 아주 과학적인 문자래.”
  “한국에서는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대.”
  정말 떠들썩하고, 대체 뭐야, 얘는.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도 보통은 케이팝이나 한국 배우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 것 아닌가?

  “엄마는 아빠가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알겠지?”
  사실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몰랐다.
  “엄마는 아빠가 한국 사람이라서 결혼한 게 아니야.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우연히 한국 사람이었던 것뿐이야.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그렇게 중요해?!”
  틀림없는 내 진심이면서, 동시에 논점을 슬쩍 바꾸는 최강의 논법이었다.
  그래도 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근데 아빠는 엄마가 ‘먼저 밥 먹어’라고 했을 때 좀 쓸쓸해 보이던데?”
  야근하는 날이면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딸은 나보다 남편의 나라와 남편을 더 자세히 보고 있었다.

  어느새 몇 년이 흘렀다.
  어느 겨울날, 딸이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고, 입원하고, 수술도 받았다.
  첫 수술의 마취가 풀린 새벽, 딸에게서 라인으로 연락이 왔다. 그날은 유난히 차갑던 한겨울의 희미한 새벽이었다.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다고. 병이 너무 싫다고.
  모처럼 한국에 대해 공부했는데, 아무 소용도 없게 된 것 같다고. 아무튼 엄마를 보고 싶다고.

  이 시간에는 병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밖에서 높은 층에 있는 딸의 병실 쪽을 올려다보며 답장을 보냈다.
  “수술 고생했어. 한국에 가고 싶지? 퇴원하면 빨리 가자. 동대문도 구경하고 세종대왕 동상도 보고 다 같이 맛있는 것도 많이 먹자.”
  곁에 있어 주는 것조차 할 수 없다면, 딸의 마음을 그 아픔에서 조금이라도 돌려놓고 싶었다. 병원의 규칙도, 추위도, 모든 것이 답답했다. 무엇보다 쓸모없는 내 눈물이 짜증스러웠다.

  며칠 후, 딸은 퇴원했다. 다행히 수술 후 경과도 순조로웠다.
  “나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 언제 가는 거야?!” 떠들썩한 딸이 돌아왔다.
  “나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공부한 게 소용없다고 했잖아.’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우리는 드디어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딸은 신이 나서 난리가 났다.
  서울의 한 대형 화장품 매장에서 딸은 ‘1+1’을 보고 좋아했고, 20% 할인에 더 좋아했고, 면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기뻐했다.
  “이렇게 싸게 팔아도 가게 안 망하나?” 급기야 가게 경영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편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매장 안 벤치에 앉아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아삭아삭한 겉절이와는 정반대로, 푹 절여진 파김치 같은 모습이었다. 쇼핑을 끝낸 딸은 계산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보고 “줄 서기 싫어”라고 하기에 나는 벤치에 앉아 있는 남편을 가리켰다.
  “저기 봐. 아빠는 너보다 훨씬 더 지쳤어.”
  그러자 딸은 아빠의 모습을 보자마자 얌전히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런 평범한 일이 이렇게 기쁠 줄은 몰랐다. 나는 커다란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잠시 후, 뒤에서 “가무사하무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몹시 서툰 발음의,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딸이었다. 소용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그 순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위를 보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아래를 봐도 눈물은 흐르는 모양이다.
  문득 딸이 “엄마? 왜 고개 숙이고 있어?”라고 물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냥 바닥 보고 있는 거야.”
  머리 위에 물음표를 잔뜩 띄운 딸을 뒤로한 채 먼저 걸어갔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돌아가는 날, 비행기 안에서도 딸은 새로 산 화장품이 얼마나 좋은지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나도 남편도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남편은 근성으로 열심히 맞장구를 쳐 주고 있었다. 딸이 이렇게 웃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딸은 다음 달에도 또 며칠 동안 입원해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엄마. 나 다음 달에 또 입원하잖아?”
  그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딸은 기쁘게 말했다.
  “한국 화장품은 일본과 달리 사용기한이 다 적혀 있네! 퇴원하고 써도 안 늦어. 엄마, 절대 먼저 쓰지 마!”
  “갑자기 쓰고 싶어졌어.”
  “안 된다고!”
  정말 떠들썩하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 떠들썩함이 늘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듣고 싶다. 집에 돌아가면 화장품들을 잘 보관해야겠다.

  비행기는 곧 일본에 도착한다. 화창한 날씨다.
  위를 보든 아래를 보든 눈물이 난다면, 그냥 눈을 감자. 그래. 그러자.

  “엄마, 졸려?”
  정말 떠들썩하다. 몇 번이나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결국 눈을 뜨게 됐다.

  “한국이 그렇게 재미있었나 봐. 아빠가 한국 사람이니까 공부도 열심히 했구나.”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도.”
  “응?”
  “엄마가 새 아빠랑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정면을 보고 있어도 눈물은 흘러넘친다.

다카하시 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