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와 함께한 중학 입시 수기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내게 중학교 입시 기간은 여전히 한 편의 흑백 영화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새벽 5시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던 기억, 하루 12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씨름했던 시간들, 그리고 손목과 어깨를 타고 흐르던 묵직한 통증까지.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매 순간이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경쟁처럼 느껴졌고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모든 것을 잃을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절의 나는 통증과 불안이라는 두 개의 짐을 동시에 짊어진 채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는 늦은 밤 EBS 강의가 끝난 후 TV에서 재방송되던 드라마 ‘마의’였다. 조선시대 수의(獸醫) 백광현이 온갖 역경을 딛고 어의(御醫)가 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는 입시 스트레스로 지쳐가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백광현이 동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침으로 고통을 덜어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막연하게 ‘의학’이라는 세계에 대한 동경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팔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백광현이 “이곳이 바로 손삼리(手三里)라는 혈자리입니다. 이곳을 지압하면 팔의 통증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집니다”라고 말하며 지압하는 장면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찌릿한 전율을 느꼈다. 매일같이 쑤시고 아프던 내 팔의 통증을 덜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이 샘솟았다.

  그날 이후, 내 중학 입시 공부법에는 새로운 루틴이 추가되었다. 바로 ‘손삼리 지압법’이었다. 드라마에서 본 대로 팔꿈치에서 손가락 두세 개 정도 아래에 위치한 그 지점을 찾았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 반, 반신반의하는 마음 반이었다. 아픈 곳을 꾹꾹 누르니 정말 백광현의 말처럼 찌릿한 느낌이 전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통증이었지만 몇 번 반복하자 신기하게도 팔의 묵직한 느낌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물론 이 작은 행동이 실제 의학적인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제 풀이와 암기 속에서, 나는 지쳐가는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볼 작은 틈을 발견한 것이다.

  손삼리를 지압하는 시간은 나만의 ‘마법 같은 휴식 시간’이 되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혹은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는 사회 과목 연표에 좌절하다가, 나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고 내 팔의 손삼리를 찾아 눌렀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느껴지는 시원함은 마치 백광현이 내게 직접 침을 놓아주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 루틴은 단순히 통증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나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지금 나를 돌보고 있다'는 그 작은 확신이 불안과 초조함에 가득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켰다. 손삼리를 지압하는 동안 나는 잠시 모든 것을 잊고 호흡에 집중했다. 길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면서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을 풀어냈다. 이 시간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주었다.

  ‘마의’의 백광현이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갔듯, 나는 손삼리 지압이라는 나만의 방법을 통해 입시라는 고통스러운 길을 헤쳐나갔다. 이 작은 행위는 나에게 '자기 치유'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내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를 위한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 그것이야말로 입시라는 긴 마라톤을 완주하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무작정 달려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고 보듬어주는 법을 배웠다.

  마침내 다가온 입시 당일, 나는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은 손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손삼리를 지그시 눌렀다. 시험장의 공기는 한없이 무거웠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그러나 손삼리를 지압하며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자, 거짓말처럼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손삼리는 단순히 팔의 통증을 덜어주는 혈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나를 향한 격려이자, 스스로에게 건네는 응원의 주문이었다. '할 수 있다, 나는 괜찮다.' 그 짧은 확신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나는 모든 문제를 차분하게 풀어낼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대단한 입시 비법이 아니었다. 드라마 속 백광현이 전해준 '손삼리'라는 작은 지식과, 그것을 내 삶에 적용하여 만들어낸 나만의 작은 의식(儀式)이 전부였다. '마의'는 나에게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굳건한 정신력과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을 가르쳐 준 인생의 교과서였다. 그 시절의 나는 '손삼리'라는 나만의 비밀 무기를 통해 통증과 불안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합격이라는 길을 개척했던 것이다. 잊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추억이다.

마스다 칸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