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마스이시 유키

머릿속에는 많은 서랍이 있다고 한다
내 마음속에는 어지럽게 놓여진 많은 상자들이
머릿속의 서랍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상자

꽤 오래된 낡은 상자
넣을 물건이 적어서 움푹 들어간 상자
네모난 상자, 마름모 상자, 비뚤어진 상자
그리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상자

상자 속에는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그 순간에 만난 사람, 음악, 공기, 냄새, 색
수없이 많은 기억이 담겨 있다
슬퍼서 조금밖에 넣을 수 없었던 상자
기뻐서 신이 나서 너무 많이 집어넣은 상자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상자는 빈 상자
난잡하게 놓인 수많은 상자들 앞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자
어째서일까
그때는 많이 채워 넣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채울 수 없게 되었다

어렸을 때 몰래 채운 상자
소중해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마치 보물상자처럼
가끔 열어보고는 설레고
그때는 그렇게 즐거웠는데

어른이 되어서
여러가지 일들이 지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게 되어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텅 빈 상자만 여기 있다

다시 한번 그 시절의 그 상자를
한 번 들여다볼까
다시 한번 그 시절의 그 감각을
느껴볼까
그러면 다시
상자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불행」이 아니라 「행복」으로
「슬픔」이 아니라 「기쁨」으로
「혐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텅 빈 상자를 채우고 싶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인생이란 이름의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