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수기
아버지가 올해 4월에 돌아가셨다. 장례식 다음날에 문득 아버지의 수기가 실린 소책자가 생각났다. 그 소책자는 약 26년 전에 대학 동창회의 의뢰로 아버지가 대학 졸업 후부터 고등학교 교사직을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까지의 일을 적은 글이 게재되어 있는 문집이다. 당시 어머니가 잘 보관해두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 책상 위의 정위치에 비닐봉지에 넣어둔 채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채 놓여 있던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읽어야 할 때다.“라는 마음의 소리가 나서 그 소책자를 펴고 아버지의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다. 첫 부임 학교 체육 대회에서 체육 교사가 아닌 아버지가 도립으로 얼마나 긴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종목에서 몇 년이나 1위였다고 적혀 있었다. 만년에 다리가 약해져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졌던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 신체에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던 한 학생의 부모를 설득하여 그 학생이 통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나 라디오 강좌 강사를 한 적도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과묵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에도 그런 시기가 있었구나 하고 놀랐다.
이 수기는 아버지의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의 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버지가 20대까지 살았던 관동 지방에서의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라 20대까지는 관동 지방에서 지냈지만 30살이 되었을 때 삼 형제 중에서 차남인 아버지가 외가를 물려받아 외가가 있는 효고현으로 이사해서 효고현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퇴직할 때까지 계속했다. 문면에서 관동 지방에서의 생활이 알차고 즐거운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형제와 다른 성을 쓰고 다른 운명을 짊어졌던 아버지에게 새삼스럽게 동정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평생 관동 사투리를 쓰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효고현으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와 결혼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와 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나와 언니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는 “결혼해서 큰딸과 작은딸을 점지 받았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수기를 다 읽고 나서 우선 아버지는 의외로 글을 잘 쓰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버지 생전에 이 수기를 읽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의 마음이 복받쳤다. 만약에 생전에 읽었다면 “아빠, 잘 쓰셨구나.” 하고 칭찬해 주거나 관동 지방에서의 일등을 질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불과 6쪽짜리 글이었는데, 왜 이 소책자를 펴볼 생각을 못 했느냐고 자책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좀 더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 수기를 생각해 봐도 될까? 먼저 말이 없고 가족에게조차 자신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이 수기를 통해 자신의 반생을 이야기해 준 것은 감사할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책자를 신품 상태로 보관하고 있던 이는 나다. 게다가 가족 중에서 이 수기를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도 나다.
그러니까 아빠, 용서해 줄 거지?
무엇보다 이렇게 글을 써서 발표하기로 한 것은 나 치고는 잘했다고 생각해 줄 거지? 아빠!
세토 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