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하루가 있다.

  봄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던 무렵. 그 안과 의사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선생님은 수술이 필요한 이유를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먼저 오른쪽 눈부터 수술을 받았다. 그날 밤 거즈로 덮이지 않은 왼쪽 눈으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새로운 렌즈로 무엇을 보게 될지 생각했다.

  퇴원 후 세상이 또렷이 보이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던 6월 16일. 그 기회가 찾아왔다.

  아침은 늘 혼자 먹는다. 쉴 틈 없이 바쁘던 회사원이었던 남편은 퇴직 후 여유로운 늦잠을 즐기는 편이다. 조용한 거실에서 설거지를 마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신문을 집어 든다.

  일요일의 소소한 즐거움은 공원이나 식물원에서 찍은 꽃 사진을 보는 것이다. 보자마자 3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동창 다섯 명이 60살이 넘어 SNS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6월.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사진을 올렸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나무에 비행기 창문 밖 구름처럼 피어난 보라색 꽃이 담긴 사진이었다. 중남미가 원산지라고 했다.

  처음 들어본 꽃 이름. 자카란다. 직접 보고 싶었지만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까지 꽃놀이를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 이곳저곳을 찾아보니 아타미나 미야자키 같은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찾아보니 바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고야시 히가시야마 동식물원 온실. 지하철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꽃이 모두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로 1년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온실을 방문했을 때 그곳은 숨이 막힐 정도로 습기다 가득했다. 땀을 아무리 닦아도 계속 흘렀다. 어디 있을까? 마음속으로 꽃 이름을 외치며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머리 위에 보라색 꽃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봤다. 1초, 2초, 3초… 시간이 멈추고 소리가 사라졌다. 아마 내 숨조차 멈춘 듯했다.

  꽃송이는 포도송이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에게는 어릴 적 친정아버지가 사 주신 분홍색 솜사탕이 떠올랐다. 가는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꽃들은 떡 벌어진 원뿔 모양이었고, 그 옆에서는 자귀나무 잎처럼 생긴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기쁨에 흐르는 땀도 잊은 채 팔을 쭉 뻗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동창들과 나누고자 했던 그 사진들은 핸드폰을 바꾸면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새로운 렌즈로 보면 얼마나 예쁠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있었던 1984년에 결혼해 나고야에 온 지 어느덧 40년이 흘렀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나고야의 가장 동쪽에 사는 내가 가장 서쪽에 있는 녹지 공원까지 꽃놀이를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도보까지 포함하면 편도 1시간 40분. 그 설렘을 안고 19일 아침, 가방 안에 핸드폰이 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며 집을 나섰다.

  온실을 목표로 가라는 녹지 공원 직원의 말대로 갔더니, 온실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한여름같이 뜨거운 하늘 아래.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구가 보여 준 사진과 똑같은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 끝마다 피어 있는 보라색 꽃들이 틀림없었다.

  이 만남은 마치 한국 드라마에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처럼 갑작스럽고 놀라웠다. 10미터나 되는 그 나무를 올려다보자 목이 점점 아파졌다. 가까이 가서 보기도 하고, 멀리서 보기도 하며 그 광경을 직성이 풀릴 때까지 지켜봤다.

  꽃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행복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결국 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자라에서 느낀 기쁨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여러 사람과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핸드폰으로 자카란다를 보다가 잠깐 손을 내렸다.

  의사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자카란다는 기분 좋게 흔들렸다. 기쁨과 그리움이 함께한 하루였다.

고가 후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