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난 한국 할머니

  나는 오사카에 있는 한국식 불고기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80대 재일교포 노부부가 하시는 곳인데 고기 외에도 찌개나 국, 그리고 야채볶음이나 제육볶음과 같은 가정 요리까지 다양한 한식을 맛볼 수 있어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집이다.

  사장님이신 할아버지는 일을 아주 부지런히 하시고 평소에 말씀을 별로 하지 않으셔서 지금까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지만 할머니께서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손님이나 아르바이트생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내가 이번 모꼬지에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그 할머니가 떠올라 일본에서 만난 한국 할머니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먼저 두말할 것도 없이 할머니는 요리를 잘하신다. 우리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불고기보다 찌개류나 무침요리를 많이 주문하신다. 20년 넘게 오시는 단골손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머니의 손맛은 레시피를 배우고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도 절대로 재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손님은 재일교포 3세 분인데 한국에 자주 못 가는 대신에 우리 식당에 한국 요리를 먹으러 온다고 자주 이야기하셨다. 우리 식당에서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매번 식사를 제공해 주는데 그 요리도 할머니께서 다 직접 만들어 주신다. 김치찌개나 비빔밥과 같은 것은 물론, 설날에 먹는 떡국 등 손님에게 제공하는 메뉴와 같은 것도 자주 해 주시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 기다려질 정도이다.

  보통 식당에서는 그 집만의 맛을 지키기 위해 손님에게 메뉴 레시피를 알려주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께서는 손님이 요리 레시피를 물어보면 자주 오는 손님이든 처음 온 손님이든 상관없이 바로 종이에다 조미료 비율까지 자세히 적어 알려 주신다. 나는 그 행동이 신기해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할머니께 여쭤보았더니 “레시피를 알고 싶을 정도로 내 요리를 좋아해 주는 손님인데 알려주지 않을 이유는 없어. 그리고 어차피 내가 만드는 거랑 완전 똑같이 만들 수는 없을 거야”라고 생긋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자신의 불이익이나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손님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시는 마음 씀씀이에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내가 할머니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레시피를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요리 솜씨에 자신감이 있더라도 몇십 년이나 요리를 해오면서 얻게 된 레시피를 남에게 알려준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의 요리 레시피를 손님에게 나누어 주려는 행동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정을 나누는 마음’이 느껴졌고, 동시에 나도 할머니처럼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리 식당에는 텔레비전이 있어 할머니께서는 뉴스나 프로그램을 보면서 손님이나 아르바이트생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시는데, 할머니께서는 여행, 가요, 예능, 스포츠, 드라마, 뉴스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다. 어떤 프로그램을 보실 때도 집중해 보시고, 어떤 때는 손님에게 질문을 하시거나 개그맨의 만담에 날카롭게 찌르시곤 한다. 그런 할머니 덕분에 식당 안에는 항상 웃음소리로 가득 차고 손님들도 대화거리가 생겨서 더 재미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 정신없이 일하는 나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 여름에는 파리올림픽 경기를 보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내 눈에 인상 깊게 비쳤다. 할머니께서는 경기나 나라에 상관없이 자신의 손자를 보는 것처럼 응원하고 계셨다. 나는 그때까지 내 선입견으로 나이가 드신 한국 분이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이 아닌 나라의 선수 특히 일본 선수를 열심히 응원하시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는데, 할머니께서는 일본 선수의 이름까지 다 외우면서 응원하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동시에 우리 할머니라면 당연하겠다는 생각에 또다시 할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

  언제나 그 친절하고 밝은 성격과 변함없는 맛있는 요리로 손님이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힘을 나눠 주시는 할머니 시지만 요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이 몇 달 동안 진통제를 드시면서 요리를 하고 계신다. 특히 이번 여름철에는 더운 주방에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셔서 “손님한테 오늘은 찌개 안 된다고 말씀드릴까요?”라고 내가 몇 번 말해보았지만 할머니께서는 “아니야. 이 정도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하시면서 요리를 계속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할머니 몸에는 그동안에도 무리가 쌓여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신 끝에 올해 8월로 우리 불고기집은 식당 문을 닫기로 했다. 손님들은 할머니의 요리를 이제 먹을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고 나 역시 이 식당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섭섭하지만 할머니의 건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아픈 것까지 참아가면서 주방에 서실 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신 데다 여름 방학이 되어 자취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다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가게에서는 나 혼자 일하는 상황이 되어 내가 할머니를 곁에서 도와드리지 못할 때가 점점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상황을 본 단골손님 2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이 주문한 것은 스스로 가져가서 먹겠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해주면 너무 고맙다고 부탁하셨고 그것을 보신 사장님께서는 그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좋은 고기를 제공하셨다. 그 손님들 덕분에 나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면서 마음 편하게 일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은 지금까지 할머니께서 손님들에게 해 오신 행동 하나하나와 할머니의 인격이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도와주려고 나서 주신 손님에게는 물론 할머니께도 감사함을 느꼈다.

  엊그제 영업시간이 지난 가게를 평소처럼 정리하던 나에게 할머니께서 “네가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참 고맙고 대견하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 건지 궁금하네. 나도 같이 배워보고 싶다.”라고도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어렸을 때는 한국어를 많이 쓰셨지만 일본에서 오래 살게 되면서 점점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줄어 지금은 문장을 알아듣는 것도 조금 힘드시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할머니께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아닙니다. 제 한국어는 아직 멀었습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할머니께서는 내 표정에서 좀 복잡해진 내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뭐 너보다 내가 오사카 말은 잘한단다. 너는 고향이 오사카가 아니니까 오사카 말도 배워야 하니 바쁘겠네.”라고 장난을 치시면서 밝게 웃어 주셨는데 그 할머니의 말씀이 계속 내 마음에 남아 그날 이후 한국어와 나, 한국어와 할머니, 일본어와 할머니, 언어를 배운다는 것 등,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교 3학년인 나는 요즘 자신의 진로와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어를 전공하는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배워 왔던 것이나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살릴 수가 있을까? 나는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등등이다.

  나의 수많은 고민에 대해 당장 답을 내기는 어렵지만, 그날의 할머니와 나눈 대화 덕분에 알게 된 사실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가 한국어 공부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값진 일이라는 것’이다. 언어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는 닮은 점이 많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서로 미묘하게 다른 점도 많아 매일 배우면서 그것들을 만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또 나는 원래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다양한 글이나 자료를 직접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지식과 교양을 얻을 수 있다. 할머니와 같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살게 된 배경이나 지금까지 겪어 온 것들을 알아볼 때에도 한국어로 찾으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아 한국어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하신 ‘나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통해 내가 지금 당연한 것처럼 하고 있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절실히 원해도 이루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한국어로 글을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한다.

  또 무엇보다 나와 할머니 사이에 대화거리가 많은 것도 내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주로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가끔씩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한국어 단어나 속담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고 모르는 표현에는 질문하거나 아는 것에는 반응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기쁜 표정을 지으신다. 나도 할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한국어나 한국에 관련된 화젯거리에는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지내는 마지막 기간이 될 내년에 한국에서 또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것을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역시 할머니께서는 많이 기뻐해 주셨고 나를 응원한다고도 해 주셨다. 내가 한국 대학교에서 배울 것은 한국의 국어인데 전에 할머니께서 “나도 배우고 싶다”라고 하신 한국의 언어이다. 현지의 국어 수업을 대학교에서 듣게 될 것이라 나에게는 어려운 것들도 많이 있겠지만, 공부가 힘들 때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열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내가 일본에서 가까이 지낸 한국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에 내가 느낀 것들을 써 보았다. 누가 보면 그냥 불고기 식당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여사장님의 이야기에 불과하겠지만 나에게는 그 할머니와의 만남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버팀목이 되어 줄 소중한 추억들이다. 이제 가게에서 할머니를 뵐 일은 없게 되지만 언젠가 다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가 오기를 바란다.

  할머니, 김치찌개 참 맛있었고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부디 아프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나중에 제가 성장한 모습으로 꼭 찾아뵙겠습니다.

이시와타 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