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를 쓰는 즐거움
우연히 시작한 일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다. 친정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려고 시작한 엽서 쓰기에 어느새 빠져든 것이었다.
큰 연못이 있는 오호리 공원. 밤이 되면 강가를 따라 포장마차가 늘어서는 나카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돈코쓰라면이 유명한 후쿠오카. 모모치 해변공원에 가서 후쿠오카 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혹시 부산이 보일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한국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후쿠오카.
거기에 올해 12월이 되면 아흔 살이 되시는 친정 어머니가 계신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릴 무렵. 백신 접종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워서 나고야에서 한 발조차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점점 감염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2023년 4월 7일.
오래간만에 뵌 모습은 여전히 흰머리 한올도 없이 건강하게 보이셨는데 이제는 보청기를 껴도 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게다가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조차 디딜 수 없으셨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6년. 요즘 들어 부쩍 힘든 날이 많아졌다고 하시며 그럴 때는 제가 보내 드린 엽서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보신다고 하셨다. 특히 오래된 것이 더 보기 좋다는 말씀을 듣고 그때가 떠올랐다.
친정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되던 날. 아침저녁으로 매일 두 번씩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후쿠오카를 떠나왔다. 그런데 전화는 일순간이니까 늘 곁에 둘 수 있는 것을 하나 마련해 드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엽서라도 보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렸다. 근데 우리 집은 어디를 둘러봐도 눈길을 끌 수 있는 화제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돼지띠는 생각하자마자 움직이는 행동파. 더구나 원래 고집쟁이인 저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편이다. 그날부터 미술에는 소질이 전혀 없는 제가 야채나 과일을 그렸다. 귀여운 스티커를 많이 붙일 때도 있고 미술관이나 관광지에서 산 많은 그림엽서 중 하나를 골라서 보낸 적도 있다. 신문에 예쁜 꽃 사진이 있다면 꼭 오려서 붙였다. 늘 이야깃 거리가 고민거리였는데 그래도 하루 한 장 꼭 보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 친정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뭐가 이렇게 즐거운지 모를 만큼 즐거워졌다. 친정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울던 제가 이렇게 신나게 엽서를 쓰다니.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무슨 엽서를 보내 드릴까? 머릿속은 그 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1년 6개월. 엽서 쓰기를 중심으로 시간이 흘러서 어느새 그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마음이 생겼다. 친구들에게 보내도 될까?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일부러 엽서를 보내다니 이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엽서를 받아든 친구들은 아주 기뻐해 줬다. 그리고 지난해 9원부터는 몸이 아픈 친구에게 보내고 있다. 만난 지 49년.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쓰는 엽서. 일주일 한 번 제 마음을 싣고 규슈로 날아간다.
그렇다고 엽서를 보내자고 큰 소리로 외칠 생각은 전혀 없다.
이 세상에는 메일이나 라인과 같이 화살처럼 빠른 수신이 일상이다. 엽서는 상대방이 받을 때까지 며칠이나 걸린다. 엽서를 준비해야 하고 반드시 우체통에 넣어야 한다. 올해처럼 덥다면 밖에 나갈 기운조차 없어진다. 시대에 뒤떨어진 통신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이 않을 것이다.
1장 63엔짜리라도 10장 쓰면 맛이 있는 라떼 한 잔이랑 같은 가격이다. 시간과 돈은 그것을 가진 자가 생각하는 대로 쓰는 것이 제일 좋다.
이렇게 구식이자 진짜 손이 가는 엽서. 그래도 저는 100밀리×148밀리의 작은 종이를 좋아한다. 긴 문장을 쓰지 않아도 좋고 그림만 그려도 좋다. 글자를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특별한 화제가 없어도 상관없다. 가을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쓰면 평소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 정성껏 쓴 제 엽서가 꼭 상대방 집에 무사히 닿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우체통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고가 후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