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기억은 없어도
또다. “너는 누나니까 참아야 해.”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남동생이 세명 있다. 나는 사 남매의 장녀고. 무엇을 하든 부모님은 동생을 우선시켰다. 나도 장녀인 내가 참아 해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부모님이 동생을 우선하시면 역시 화가 났다. ‘나는 어쩌면 동생보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화를 내던 나에게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어릴 때가 훨씬 소중하게 길러지고 있었어. 그것에 비하면 네 동생에게는 그 반도 해 주고 있는 것은 없다.”라고. 하지만 당시의 기억이 없는 나에게는 그 말에 아무 의미도 없었다.
어느 날 책을 찾기 위해 책장을 뒤지다가 한 권의 수첩이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을 꺼내서 보니 표지에 ‘육아일기’라고 쓰여 있었다. 표지는 색이 바래서 얼룩도 있고, 내 이름도 쓰여 있었다.
처음에는 흥미 본위로 폈던 일기장이었지만 점점 그 내용으로 끌려들어갔다.
그 일기장은 한 시간마다 아기를 기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면시간, 체온, 배뇨, 배변, 무엇을 먹는지 등 여러 가지가 빽빽하게 적어 있었다. 페이지 여분에는 그날 있었던 일도.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읽어 가다 보니 내 시야는 흐릿해지고 볼펜 잉크가 번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감동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내용도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은 후 이 일기장을 부모님께 건네 봤다. 그러자 어머니는 소녀 같은 다정한 미소로 일기장을 받아들이셨고 아버지는 천진난만한 어조로 “그러고 보니 매일 적었지”라고 그리움에 빠져 계셨다.
두 분이 당시의 추억을 이야기하시면서 미소로 그 일기장을 보고 계시는 모습에서 정말 내가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일기를 읽고 계시던 어머니가 무언가를 생각난 듯 일어나 방을 나가셨다. 조금 지난 뒤 미소로 돌아오신 어머니의 손에는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한 살의 나에게 쓰여진 것이었다.
당연히 한 살의 어린아이에게는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컸을 때 주려고 생각하고 계셨다고 한다. 내용은 여느 편지와 다름없었지만 부모님이 이 편지를 어떤 마음으로 쓰셨던 건지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나와 부모님 셋이서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이러한 일기나 편지를 동생에게는 쓰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쓰지 않으셨다’라기 보다는 ‘못 쓰셨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서 여러 가지를 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부모님께 불평하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기억이 없어도 해 주신 것은 변함이 없는데.
만약 육아일기나 편지를 보지 않았다면 우선시되는 동생에게 원망을 품을 정도였을 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미 당시에는 동생을 원망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포함해서 좋은 추억이다. 육아일기와 편지도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어릴 때 부모가 자신 이외의 것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또 나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감정은 자신이 부모를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한다고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부모는 먹지 않고 자식을 주고, 자식은 먹고 남아야 부모를 준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반드시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을 것이다.
비록 어릴 때 기억은 없어도.
가도타 히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