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과 바다
어릴 때 몸이 약했던 내가 조금이라도 튼튼해지기를 바라신 부모님은 나를 수영 교실에 보내셨다. 그런데 물속에 장시간 들어가 있는 것이 좋지 않았는지 수영 연습 후에는 열이 났다. 오히려 건강에 역효과라서 3 개월도 안 돼 수영을 그만두게 됐다. 그 후 나는 헤엄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 어디에선가 마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특히 서퍼를 동경하게 됐다. 보드를 화려하게 조종하면서 파도와 하나가 되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마치 동물처럼 아름답다. 또한 갈색 피부에 하얗게 빛나는 치아, 남성에게도 긴 머리가 잘 어울려서 참 멋있다. 머리숱이 적어진 나는 머리를 길러서 흔들 수는 없지만, 한 번만이라도 파도를 타는 감각을 맛볼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50 세를 맞아 인생의 전환점을 돈 것을 기념해,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은밀하게 '서핑'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나는 수영을 못한다. 그리고 튜브를 사용하는 서퍼를 본 적도 없다. 시험 삼아 인터넷에 '서핑', '헤엄칠 수 없다'를 검색해 보았는데, '그만두는 게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맥주병인 나에게 서퍼라는 꿈은 그저 꿈으로만 끝나는 것인가? 회사 동료에게 넋두리를 했더니 뜻밖의 조언을 듣게 됐다.
"그럼 SUP(섭)은 어때? 라이프 재킷을 입으니까 수영을 못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SUP은 스탠드업 패들 보트로 들어 본 적이 있지만, 가짜 서핑이라는 정도의 얕은 지식밖에 없었다. 서퍼가 되는 것이 무리라면 패들러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다시 인터넷 검색창에 'SUP', '헤엄칠 수 없음'하고 입력해 보니 이번에는 '괜찮다'는 결과가 나왔다. 도전해 볼까?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찾아보니 우연히도 집에서 차로 15 분 거리에 교실이 있었다. 내가 사는 니시노미야는 오사카와 고베라는 대도시 사이의 해안 지역인데,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해안을 공장지대로 만드는 계획이 세워졌을 때 주민들이 반대한 덕분에 지금도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모래사장이 남아 있다. 20년 동안 거의 가 본 적이 없지만 거기서 SUP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니시노미야의 바다가 나를 쭉 기다려 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1 시간 체험 코스를 신청했다.
인생 첫 SUP. 조심스럽게 보드 위에 서려고 하는 나는 분명 갓 태어난 아기 사슴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릎이 벌벌 떨려서 좀처럼 보드에서 두 손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아기 사슴도 언젠가는 일어나야 한다. 패들을 잡은 채 두려워하다가 마침내 무릎을 세우고 보드 위에 설 수 있게 됐다! 잠시 동안 상반신이 흔들렸지만, 힘을 빼니 그 움직임도 진정됐다. 직립 부동의 자세로 조용히 흔들리는 보드 위에서 태양의 빛을 전신에 받으며,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꼈다. 최고의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패들을 저을 차례이다. 배운 대로 패들을 수직으로 물에 찔러 넣고 몸을 앞으로 굽힌 채 체중을 실어서, 물속의 블레이드를 힘껏 뒤로 밀어냈다. 앞으로 나아갔다. 천천히 움직였지만 확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열중해서 몇 번이나 패들을 저으니 속도가 올랐지만,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나는 바닷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보드는 리쉬로 묶인 오른발과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라이프 재킷 덕분에 내 몸은 계속 바다에 둥둥 떠 있으니. 보드를 손으로 잡고 다시 올라탔다. 그리고 일어서서 필사적으로 패들을 계속 저었다. 1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바다와 인연이 없었던 수십 년의 시간을 되찾으려는 듯이 주말마다 바다에 가서 보드를 탄다. 아직 초보자지만 올 여름에는 도쿠시마에서 열리는 SUP 마라톤 대회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가족들은 햇볕에 까맣게 타서 돌아오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고 가끔은 함께 놀 수 있게 데려가 달라며 불평하기도 한다. 모처럼 찾아낸 이 새로운 취미에 열중하는 것도 좋지만, 오래 계속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보드 위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중요한 것은 밸런스니까.
쓰지 켄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