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도서 : 82년생 김지영
’남녀평등’이라는 말을 최근 자주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이 말을 들어도 남의 일 같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화제를 부른 이 책은 남녀공동 참획을 향한 흐름이 있는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화제라면 조금 읽어 보는 것도 좋을까 그런 가벼운 기분으로 손에 들었다. 거기에는 ‘어차피 페미니스트가 쓴 페미니스트 옹호의 소설일 것이다.’라는 쌀쌀함과 동시에 어리석은 생각이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은 좋은 의미로 배신 당하게 된다.
먼저 놀란 것은 「2015년 가을」을 읽었을 때다.
주인공인 ‘지영’의 언동이 어지럽게 변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견 무슨 불만도 없는 것 같은 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는 이상을 초래해 버린 것일까? 나는 이유를 모르고, 대단히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그 곤혹은 천천히 납득으로 변화되어 간다.
‘지영’을 지금까지 둘러싸고 있었던 환경이 크게 관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소기의 때부터 일을 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저절로 중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유소기의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영향은 그 후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참을 수 없게 돼 버린 것이 아닐까라고 어쩐지 이해가 가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바꿔서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은 ‘만약 자신이 지영의 남편 혹은 친족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대응을 취하고 있었을 것인가? 낡은 생각에 고집하지 않고 아내를 헌신적으로 떠받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머리에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인 풍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방해를 해 버리는 것도 크게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더 한층 곤란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일본은 잘 “부끄러움의 문화다.”라고 말해진다. 이 말은 루스・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에 나온 말이다. 봉건제도의 잔향이 아직도 확실히 남아있는 일본에서는 세상의 상식통념으로부터 벗어난 일을 했을 때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일이 많이 있다.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는 해도, 현대의 일본에서도 참된 ‘남녀평등’을 목표로 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아도 해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요즘의 me too 운동에 보여지도록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 사회는 바뀌어 갈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 속에서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문제를 알아차리게 해 주었다.
이후, 이 책으로부터 배운 것을 살려서 사회통념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각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
와타나베 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