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기’보다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았다. 우리 집에서는 매달 제사를 지냈다. 사진으로만 보던 할아버지의 제사 때는 잔소리를 많이 하시는 친척들이 찾아왔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눈치를 본다는 것을 일본어로는 공기를 읽는다고 표현하는데 분위기를 잘 살피라는 의미이다. 우리 어머니는 손님들의 표정을 살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해 드리라고 하셨다.
우리 조부모처럼 100년도 전에 바다를 건너 일본에 온 한국인들은 100년 전에 멈춰 있는 생활 양식과 상식을 그대로 갖고 있다. 여자는 제사 참석자가 아니라서 손님을 대접할 뿐이다. 술이나 요리를 내오라고 재촉 당하기 전에 내놓아야 한다. 먼저 온 젊은 사람보다 나중에 왔더라도 연장자를 우선해야 하는, 나이 든 남성에게 있어서 편안한 시절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길에서 스치는 나이든, 특히 여성을 간과할 수 없다. 불안한 걸음으로 짐을 들고 걷는 분에게는 그만 “들어 드릴까요?”하고 말을 걸어 버린다. 대부분은 상대가 고맙지만 괜찮다고 한다. 웃는 얼굴로 대답해 주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배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 나이가 더 든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같은 말을 듣게 된다면 나 역시 괜찮다고 대답할 것 같기는 하다. 단지 사양해야 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하고 싶어서다. 이제까지 나의 제안에 괜찮다고 거절했던 분들도 아마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사람 둘이 모이면 인간 관계가 생긴다. 좋은 인간 관계를 만들려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언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자기 이야기로 바꿔 버리는 것은 당치도 않다. 직장에 다닐 때 동료들이 바쁘게 일하는데 자신만 느긋하게 있는 것은 규칙 위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퇴근하려는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매사에 분위기를 읽게 된다.
그런데 분위기를 너무 읽어도 피곤한 일이 돼 버린다. 들떠 있을 때 누군가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을 듣게 되면 시무룩해지지만, 누구에게나 몸 상태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은둔형 외톨이가 돼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가끔은 사람들과 있을 때라도 주변을 너무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내보이면 어떨까? 언제나 멋있는 사람의 꾸밈없는 모습이나 항상 밝고 활발한 사람의 언짢은 태도는 인간미가 느껴져서 재미있지 않은가? 조용한 사람이 불합리한 뉴스에 격노하는 모습은 신선해 보인다.
의외성을 봤을 때 갑자기 흥미가 솟는다. 주위를 잘 살피지 않은 사람은 매우 순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엄청난 집중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또한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소문난 사람은 사실 못 본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치를 보는 것만으로는 진심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없는 것 같다.
미쓰야마 아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