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을 위해
그 당시의 나는 아무것에도 열중할 수 없었고 마음이 답답했다. 이유 없이 공허하고 “뭔가 재밌는 일 없을까”라는 말이 입버릇이었다.
그 무렵, 여동생이 그렇게 말했다.
“같이 한국 아이돌 응원하지 않을래?”
듣고 보니, 여동생은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었고, 시청자 투표로 데뷔 멤버가 결정되기 때문에 응원 도움을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한국도 아이돌도 전혀 관심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동생의 최애를 의리로 응원하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그들의 진지한 노력, 억울함과 눈물, 그리고 음악을 향한 순수한 사랑—. 꿈을 좇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 눈부셨다.
어느덧 나는 여동생보다 더 열심히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여동생이 “오늘 밤 생방송이 있으니까 같이 보자”라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화면을 켰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당황했다. 진행이 전부 다 한국어였기 때문이다.
“일본어 자막은?” 내가 물었다.
“생방송이라 아직 안 나온 것 같다…” 여동생이 조금 당황한 듯 대답했다.
그 순간, 가슴에 깊이 구멍이 뚫린 듯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파도 소리처럼 흘러가 버릴 뿐이었다. 심지어 나는 멤버들의 이름조차 읽을 수 없었다. 늘 곁에서 응원해왔는데 오히려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나는 그때 마음을 먹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려도,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그때부터 내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애정을 쏟는 멤버들의 영상을 보며 단어를 받아쓰고, 발음을 따라 하며 연습하고, 문법을 하나씩 익혔다. 외국어를 배우는 건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깊이 있는 경험이었다. 점점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관심이 생겼다.
“나는 생각보다 끈기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느낀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기쁨,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실감. 배울수록 그들의 곡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나의 등을 더 힘차게 밀어주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드디어 나는 TOPIK 6급에 합격했다. 누군가가 강요해서가 아니었고 일 때문에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더 알고 싶다”, “이해하고 싶다”라는 간절함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데뷔한 그룹의 일본 공연이 열렸다.
응원해 왔던 그들이 지금 내 바로 눈앞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항상 공부하는 동안 들으면서 격려를 받았으니까 그들의 곡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노력했던 수많은 날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공연은 거의 일본어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멤버들이 코멘트할 때, 한 멤버가 감격에 겨워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온 발걸음. 과거의 불안과 지금의 기쁨.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바치는 감사의 마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알 수 있다. 말의 의미뿐 아니라 떨리는 목소리,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부드러운 분위기,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투까지—. 모두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단 1센티미터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딱 그만큼의 거리라도 내게는 충분히 큰 의미가 있었다.
“그래, 이 순간을 위해 내가 공부해 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실에서 보낸 시간들과 내가 공부하기 위해 책상 앞에서 쌓아온 밤들의 수많은 기록들. 다른 나라, 다른 시간 속에서 펼쳐진 두 여정이지만 지금 이 순간, 부드럽게 이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대 위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응원해 줘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나는 웃으며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나도 고마워. 덕분에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야지마 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