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 너머의 인연

  처음은 정말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쩐지 운명처럼 느껴지는 만남이었습니다.

  혼자 쇼핑을 하던 어느 날, 한 한국인 여성이 번역기 화면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음식점에 가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요. 혹시 안내해 주실 수 있나요?”
  놀랍게도 그녀가 찾고 있던 가게는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음식점이었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같이 가요”라고 말했고, 우리는 함께 가게까지 걸어갔습니다.

  서로의 언어는 전혀 몰랐지만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 어색하면서도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가게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언제부터 일본에 오셨어요?”, “혼자서 일본 여행 오신 거면 힘들지 않으세요?”
  질문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그런 내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해 주었고,
  “일본인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라서 정말 기뻐요.”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가게 간판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같이 밥 한 끼 할래요?”
  나는 그 말이 적힌 번역기 화면을 보고 망설임 없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문득, ‘만약 번역기가 아니라 직접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 깊이 ‘꼭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 여행 중 느낀 점 등 여러 경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단어도 많고 어순도 비슷하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생각보다 외우기 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실제로 한국어로 말을 걸어보고 싶어져서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말하고 싶은 문장을 외워 그녀에게 서툰 한국어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웃으며 “발음이 좋아서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라고 말해주었고,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식사 후 그녀와 헤어진 나는 바로 근처 서점에 들러 한국어 교과서를 구입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글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는 웬만한 글자는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녀에게 자랑스럽게 “한글 다 외웠어!”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나의 한국어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로는 거의 매일 한국어를 공부했고 반년쯤 지나자 일상 대화 정도는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깊이 공부할수록 언어뿐 아니라 문화적인 장벽이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가장 먼저 느낀 차이는 ‘사과’와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내가 자주 “미안해”라고 말하면 그녀는
  “왜 그렇게 자주 사과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래?”
  라고 되묻곤 했고, “고마워”라고 말할 때도
  “그 말은 오히려 내가 해야 할 말인데, 일본인은 왜 그렇게 자주 ‘고마워’나 ‘미안해’를 말하는 거야?”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태어나서 줄곧 일본에서 살아온 나는 그런 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뒤, 일본 사회에서의 ‘감사’와 ‘사과’의 빈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내 나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어를 배우면서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점은 한국 사람들의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밥 먹었어?”라는 인사가 일상적으로 오가고, 지금 하는 일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은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따뜻한 문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한국인의 정 깊고 따뜻한 소통 방식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표현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 맥락이 많지만, 언젠가는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언어 능력과 문화 이해력을 갖추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끝없는 공부를 단지 ‘노력’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며, 언젠가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작은 다리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제모토 히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