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여행

  나는 매주 한차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가 그날 같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여행을 약 4개월 동안 계속해 왔다. 이것은 내 [마음 여행]이었다.

  나는 10년 전부터 한국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독학으로 번역을 해왔다. 그리고 동시에 지난 10년 동안 혼자 나이 드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어머니가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었던 탓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자주 다투기도 했고 때로는 어머니의 말에 상처를 받아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좋아하는 한국 그림책을 보는 것이 나에게 유일한 위로가 됐다. 그런데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해 오던 나는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도 막상 일본어로 번역을 하려면 잘 안되어서 한국어 공부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바로 이때 오사카한국문화원에서 한국 그림책 번역 강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 내 마음이 흔들렸다.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이 강좌에 다닐 수가 있을까, 내가 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에서 오사카까지 전철을 타고 왕복 3시간이라는 길은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많이 고민한 끝에 결국 번역 강좌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서 정해진 시간에 전철을 타고 전철 창밖으로 같은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늘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항상 내 어깨의 무거웠던 짐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교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마음이 홀가분해져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조차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내 머릿속은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매번 부디 이대로 아무 일이 없이 끝까지 수업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이렇게 내 [마음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역에서 내려서 강을 가로지른 텐마바시(天満橋) 위에서 바라보던 풍경이 점점 변해 갔다. 거센 북풍 속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추운 겨울을 느꼈고, 추위가 풀리자 내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봄을 누구보다도 빨리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설렜다. 밝은 햇살이 들고 시원한 바람이 불면 강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풍경, 언제부터인가 자연의 변화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무 일이 없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쉽게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그런 어머니 곁에서 나는 귀를 막고 싶을 때도 자주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귀를 막는 대신에 번역 작업을 통해서 언어로 귀마개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나는 마음 균형을 잡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입원하신 다음 날,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전철 창밖으로 보이던 익숙한 풍경조차도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늘 건너던 그 다리를 넘어서면 오사카의 거리가 나를 다정하게 감싸주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며 마지막 수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새 4개월이 흘러갔다. 텐마바시에서 바라보던 익숙한 풍경도 점점 습해지고 장마가 시작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 다리를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며 세 계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까지 꾸준히 강좌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던 내 마음과 열정을 다시 되찾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복 3시간의 길이 그야말로 내 [마음 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해냈다는 자신감. 그리고 거기서 만난 선생님과의 인연. 모두 다 내 평생의 보물이 되었다.

  일단 내 [마음 여행]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나는 부족했던 열정도 충전할 수 있었고 조금 자신감도 생겼다. 슬픔도 고통도 모두 겪은 뒤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기쁨이 나에게 표현이라는 큰 힘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 [마음 여행]의 제2장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와나베 에쓰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