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를 타고
나는 27살부터 54살까지 중형 오토바이를 탔다. 대학 졸업 전에 면허를 땄지만 졸업 후에는 오토바이와 무관한 생활을 했다. 취업하자마자 결혼, 출산, 육아가 이어져 벅찼다. 오토바이를 못 탄 채 끝나나 보다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때 첫 전근을 했다. 전근 간 곳이 공업고등학교였던 덕분에 나의 긴 오토바이 생활이 시작됐다. 공업고등학교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동료가 많아서 나에게도 면허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함께 타자고 권유해 주었다. 동료들이 오토바이를 고르는 방법이나 유지 보수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고 투어링을 갈 때에도 도움을 줬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하는 마음만 있다면 서툴더라도 잘 가르쳐 주었다. 나는 자동차 운전도 좋아했지만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오토바이를 더 좋아하게 됐다. 코너에서는 오토바이를 기울여 달리는데 차를 탔을 때에는 볼 수 없는 각도의 경치가 짧은 순간에 끝나는 만큼 특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금은 운전면허 학원에서 대형 오토바이 면허를 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젊었을 때에는 대형 면허 시험은 지정된 면허 시험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 상당히 어렵다 보니 대형 면허 취득자는 동경의 대상이 있다. 54살이 되었을 때 친구가 운전면허 학원에서 대형 면허를 딸 수 있으니까 함께 준비하러 다니자고 했다. 동경하던 대형 면허를 딸 수 있다면 한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 판단 미스였다. 학원에는 젊은 시절에 대형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동경하던 아저씨들이 많이 왔다. 아줌마는 나뿐이었다. 중형이기는 하지만 나는 오토바이를 계속 탔기 때문에 처음 타는 아저씨들보다 내가 나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대형 오토바이는 정말 무거웠다. 도전해 보고 알게 된 것은 복근의 중요성이었다. 무거운 차량을 조종하려면 양 무릎으로 조이는 힘이 필요한데 그 핵심은 복근에 있었다. 특히 평균대(가느다란 받침대에 올라서 떨어지지 않고 달림)를 탈 때에는 복근이 필요했다. 아저씨들은 의외로 복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저씨들은 평균대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언덕길에서의 발진(비탈길에서 멈추고 발진)이나 급제동, 울퉁불퉁한 길을 가는 것이 특기였다. 산길, 진흙길, 자갈길도 유경험자인 나에게는 쉬웠다. 그러나 중요한 턴을 잘할 수 없었다. 학원이기 때문에 몇 가지 과정을 수료해야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첫 번째 허들을 넘지 못해서 좀처럼 수료하지 못했는데 다른 아저씨들은 다음 과정으로 쭉쭉 나아갔고, 어느덧 모두 졸업해서 떠났다. 내 친구도 졸업했다.
한 심술궂은 교관은 귀찮게 느껴지는 나를 쫓아내고 싶었는지 실력이 안 되는 나를 다음 과정으로 그냥 올려 보냈다. 졸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모습을 본 젊은 교관이 친절하게도 나에게 여러 연습을 시켜 주었다. 학원에서 할 수 없는 연습이었다. 벽에 오토바이 앞바퀴를 붙이고 정지하는 방법이나 나를 뒤에 태우고 코너를 돌 때의 바람직한 기울기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아들 같은 교관에게 가르침을 받은 끝에 드디어 졸업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연습 덕분인지 오랫동안 학원에 다닌 덕분인지 나는 2등으로 합격했다. 그런데 젊은 교관은 “시모무라 씨, 면허를 따더라도 대형 오토바이는 절대 타지 마세요.”라는 시험 평가를 남겼다.
대형 오토바이 면허를 따면 당연히 타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중고 오토바이를 찾아서 구입했다. 하지만 역시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동경하던 대형 오토바이는 1년 정도 차고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다. 그렇게 나의 오토바이 생활이 끝났다. 대형 면허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타고 다녔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할아버지 라이더가 된 친구가 보내준 투어링 사진을 보면 지난 시간들이 그립고 부럽다.
시모무라 모토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