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
더워. 너무 더워. 시야가 일그러지는 더위다. 태양은 얄짤 없이 나를 내리쬔다. 구름이 태양을 가릴 기미는 없다. 언제부터 여름이 시작되었을까? 깨달았을 때는 매미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바다, 강, 캠핑, 축제. 여름이 되면 어디론가 외출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날에는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 밖에 나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밖에 놀러 가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놀러 가자고 하면 가고, 남들만큼 즐기는 것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위에 약한 나는 그냥 무조건으로 여름을 싫어했어.
벚꽃이 피고 사람들과 이별하다가 다시 만나는 봄.
불꽃놀이의 큰소리로 심장이 떨리는 여름.
제철 음식이 많고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겨울.
나는 이 다양한 계절 중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했다. 덥고 벌레도 많고 무엇을 하기에도 더위가 나를 훼방을 놓은 그 여름을 나는 싫어했다.
근데 바뀌었어.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변했던 것이다.
부드러운 잎에 튕겨지는 빗방울 소리가 좋다. 비가 그친 뒤 초록빛 냄새가 한층 강해지는 것도, 밤하늘에서 1년에 한 번의 만남이 있는 것도, 그날 찾아오는 더위를 상상 못할 정도의 시원한 아침도 좋다.
지금까지 여름 하면 어디 나가서 놀며 추억을 쌓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것이 여름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건 돈도 시간도 체력도 쓴다. 물론 즐거우면 무엇이든 좋지만, 여름의 좋은 점은 의외로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여름 아침. 매미가 울기 시작하는 시간은 생각하는 것보다 빨랐다. 그리고 주변이 밝아지는 시간 또한. 낮에는 창가를 봐줬으면 좋겠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은 바깥의 더위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곱다. 밤에는 수중의 불빛에서 눈을 떼서 빛나는 밤하늘에 눈을 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름 밤하늘은 맑다. 가득한 달이 있으면 더욱 좋다. 옛날 사람들도 같은 달을 봤는가 하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귀를 기울이면 예쁜 벌레 소리도 들려온다. 보기는 싫지만 울음소리는 계속 듣고 싶다.
이들 하나하나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그만큼 그걸 깨달았을 때의 감동은 크다. 보물찾기 같아서 즐겁고 여름을 더 좋아할 수 있다.
여름의 연례행사라고 하면 '숙제'. 저건 양이 너무 많다. 매년 숙제를 원망하며 끝냈다. 전국의 학생들로부터 미움을 받기 쉬운 여름방학 숙제지만,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일을 깨닫게 해주었다.
여름에는 으레 서점을 찾았다. 숙제로 내준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다. 몇 년이나 반복해서인지 이제는 여름에 서점에 가면 그동안의 여름 추억이 단번에 떠오른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사실을 깨달은 요즘 나는 더위에서 도망치듯, 지난 여름을 떠올리기 위해, 다가올 여름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서점에 가게 되었다.
올해는 여름축제도 다녀봤다. 일본의 여름 축제하면 불꽃놀이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볼 수 있어서 일부러 더운 밖에 나가서 보러 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고등학생의 마지막 여름. 큰맘 먹고 밖에 나가서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피유유유융 펑!!! 밤의 어둠을 불꽃이 비치었다. 수백 발, 수천 발의 불꽃이 터져 나간다. 해상 불꽃놀이. 집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바다에 비치는 불꽃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불꽃이 터지고 화약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매년 보고 있었는데도 첫 발견이 많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해는 좋은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에도 끝은 온다. 어느새 기온도 내려가고 태양이 얼굴을 보이는 시간도 짧아져 간다. 여름의 끝은 너무 덧없다. 왜 이렇게도 애틋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그래도 오히려 여름은 끝이 오니까 좋다. 아마 일 년 내내 여름이면 이런 생각도 안 할 것이다. 끝이 오기에 다음 여름이 기다려진다. 계절이 바뀌어 가면서 그 여름날의 감각도 희미해져 간다.
그래서 다시 떠올리고 싶어.
여름이 되어라!
가도타 히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