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자
어느 날, 딸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다고 말했을 때는 크게 당황했다.
문화와 습관이 다른 데다, 나는 한류 붐에도 관심이 없고 한국요리라고 하면 김치와 비빔밥 정도밖에 모른다. 하물며 가까이에 친한 한국인도 없다. 한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쇼와 세대의 오래된 감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만 점점 더 늘어갔다. 그는 결혼 후 일본에서 생활하고 싶어 했다.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자세에 낡은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러나 아버지로서는 결혼 의사가 확고한 두 사람을 축복해 주어야 한다.
젊은 부부의 일본에서의 생활이나 언젠가 태어날 2개의 조국을 가지는 손자를 생각하면, 나 자신도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먼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려고 유명한 한국 드라마와 한국 요리 등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남자친구인 그 사람의 뿌리를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 상태에서 결혼식은 한국에서 열렸다.
일본식의 피로연밖에 모르는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신부의 아버지로 식 마지막에 인사하게 되었다. 피로연장의 많은 한국인 하객의 앞에서 가타카나로 쓴 한국어로 식은땀을 흘리며 인사를 했다. 함께 참석해 준 일본의 옛 친구는 나의 어색한 한국어를 즐거운 듯이 웃으며 듣고 있었다. 과연 하객 여러분에게는 잘 전달되었을까?
이를 계기로 한국과 한국인을 더 알 수 없을까? 문화나 습관이나 역사를 이해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운 장래 태어날 손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한국어 학습은 나에게 미지의 도전이며 터무니없는 모험이다. 한국어는 나의 눈에 기호처럼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주변에는 한류 붐을 타고 있는 친구도 있는데 재미 반으로 나의 장대한 계획을 응원해 주고 있다.
라디오 강좌 등은 들어 봤지만 금방 질려서 그만두고 수업 시간이 정해져 있는 어학교실에 다니기로 했다. 다양한 인터넷을 조사한 결과 오사카 한국문화원에 도착했다.한국문화원이라면 말과 문화를 함께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입학하였다. 몇 번이나 어학에 대한 센스가 없음을 느끼면서도 초급을 무사히 끝냈다.
문자나 말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한국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드라마를 보거나 거리에서 관광객이 말하는 한국어를 들으면 친밀감이 느끼진다. 이것은 좋은 경향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낡은 추억은 점차 사라져 갔고, 오히려 한국은 나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가장 사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손자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언젠가 두 나라에 대한 생각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손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날이 기대된다.
과거의 상황이나 불안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이해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손자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들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그날이 점점 기대되고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딸 부부에게는 아이가 태어나 나의 손자는 세 살과 한 살이 되었다.
노테 토시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