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 어머니

  “판소리를 배우기로 했어.” 76세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오사카한국문화원의 문화 강좌 안내문을 보시자마자 내리신 결정이었다. 한국 민요, 보자기 등 여러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강좌가 매년 4월에 개강한다. 언니에게 권해 보려고 가져온 안내문이었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먼저 반응하셨다. 판소리 강좌는 한 달에 두 번, 목요일에 진행된다. 나도 마침 목요일 저녁마다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어머니께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어머니의 수강 신청을 서둘렀다. 수강 안내 메일을 받은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개강날이 오기를 기다리셨다.

  판소리 강좌 첫날이 찾아왔다. 나라에서 오사카 나카자키초까지 어머니 혼자 잘 다니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나는 회사를 조퇴하고 중간 지점에서 어머니와 만났다. 집에서 한국문화원까지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가방 안에서 뭔가를 꺼내셨다. 복사 용지를 연결해서 만든 두루마리였다. 그 두루마리에 내가 설명한 가는 방법과 함께 역 이름, 가게 등도 적어 넣으셨다. 다음부터는 혼자서 다녀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만의 부적을 만들고 계신 것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한국 문화원에 도착해서 어머니는 판소리 교실로, 나는 한국어 교실로 갈라졌다. 수업 중에 들려오는 옆 교실의 노랫소리에 우리 어머니는 잘 따라 하고 계실까 문득 걱정이 됐다.

  귀가 후에 어머니께 첫날의 감상을 물었다. 어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고,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아서 또 놀랐다고 했다. 그 밖에도 선생님 바로 앞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거나, 수업이 끝난 후에는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지하철로 이동했다는 것을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해 주셨다. 하지만 다른 수강생들이 모두 새로 배울 노래를 휴대폰으로 녹음했는데, 어머니는 녹음을 할 줄 몰라서 못 했다고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앞으로 집에서도 연습하실 수 있게 녹음기 사는 것을 도와드리기로 했다.

  주말에 어머니와 녹음기를 사러 갔다.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신 것은 조금 비싼 세련된 스틱 타입의 보이스 레코더였다. 집에서 사용 방법을 설명해 드렸지만, 연세가 많은 어머니가 사용하시기에는 작동 버튼도 작고 디지털 문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표정은 많이 곤란해 보였지만 모르는 것은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시면서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셨다. 점점 녹음은 물론, 듣고 싶은 부분을 찾아 재생하는 것에도 능숙해지셨다. 그 후로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의 판소리가 들려오게 됐다.

  요리하면서도 판소리, 빨래를 하면서도 판소리. 어느 날은 밤 1시가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어머니 방에서 판소리 연습 소리가 들린 적도 있다. 그렇게 여러 번 듣고 있자니 나도 판소리를 기억할 정도가 됐다. 어머니가 연습하시는 판소리 중에 “당장 나가거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어머니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당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우리 두 사람은 “당장 나가거라” 하고 함께 소리친 적도 있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나가셨다. 그리고 다가오는 발표회에서는 악보와 가사를 보지 않고 노래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셨다.

  드디어 찾아온 발표회 날. 어머니는 판소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한국문화원에서 빌린 한복을 입으셨다. 그리고 선언하셨던 대로 완벽하게 노래를 마치셨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노래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어머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셨다. 9개월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어머니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전차를 잘못 타는 실수를 하신 적도 있고, 교실에 안경을 두고 온다거나 길에 손수건을 떨어뜨리시기도 했다. 한국어 수업이 끝나고 같은 반 친구들과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머니가 떨어뜨린 손수건을 발견하고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판소리를 계기로 앞으로 어머니의 관심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또 배우고 싶은 것을 찾게 되신다면, 나 또한 온 힘을 다해 지지해 드릴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 어머니는 120세까지 살겠다고 선언하셨다.

다네 미나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