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바꿔 준 한국어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외국에 관심이 있었다. 어머니는 대학시절에 뉴질랜드, 한국 등의 나라에 가 본 적이 있고 그 때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셨다. 친구와 서로의 나라를 왔다 갔다 하며 관광지를 구경하거나 가족들과도 교류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또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편지로 왕래했다며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도 보여 주셨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나도 ‘엄마처럼 국제적인 교류를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졌다. 이 시기에 친구가 케이팝 그룹을 소개해 주었고 어느새 그들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다.
중학교 3학년, 진로를 결정할 때 나는 실은 고향의 고등학교를 수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쓰시마 고등학교에 가면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져 부모님을 설득해 쓰시마 고등학교에서 낙도 유학을 하기로 정했다.
고등학교 합격이 결정되고 입학하기 전까지의 나는 혼자 생활하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기대감만 가득했다. 그러나 입학 후 얼마되지 않아 낙도 유학이 얼마나 힘든 지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이 아무리 친절해도, 하숙집이 아무리 좋아도 가족과 우리집 대신이 될 수는 없다. 언제나 당연하게 함께 있었던 가족과 떨어져 방학이나 연휴 때밖에 만날 수 없고, 고민이 있어도 간단하게 상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또한 선배들은 1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에 한국어 연수를 갔지만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부산 연수를 갈 수 없었고, 그 외의 학교 행사도 차례로 취소되었다.
실망이 컸지만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생각했고 그 대신에 한국 고등학생과 온라인으로 실시하는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한국 친구와 서로 관심이 있는 양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컬처 박스를 교환하는 등 교류 시간은 매우 즐거웠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교류를 통해서 한국의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그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국어 실력의 어디가 부족하는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조금이지만 한국어 실력도 높아졌다.
나는 입학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기업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고, 다양한 교류활동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졸업 후에는 한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대학에 가서 자신이 지금까지 공부한 한국어를 살려 전공 공부를 하고, 한국의 문화를 몸으로 체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어머니께 상담해 보자 어머니는 ‘엄마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어서 지금도 후회하고 있으니까 린은 하고 싶은 것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라고 반대는커녕 등을 떠밀어 주셨다.
쓰시마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힘든 일이 매우 많아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즐거운 기억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고향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면 절대로 세우지 않을 한국 유학이라는 목표도 생겼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두지 않겠다’, ‘매일 방과 후에 조금이라도 한국어를 공부한다’ 등 계획을 세우고 매일 계속함에 따라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시작점이 된 쓰시마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이룬 후에는 또 다른 목표들이 생길 것이다. 힘들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인생의 목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계속 하겠다. 고교3년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것, 힘들어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시구치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