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공간이 사라지면 추억도 사라지게 될까?

  한큐전철 아와지 역 바로 옆에 다이쇼 시대부터 이어져 온 큰 저택이 있었다. 마당에는 다실과 연못도 있고 흙으로 만든 광도 있었다. 내가 8살까지 살았던 집이다. 조부모와 우리 일가에 막내의 삼촌 일가, 도우미들까지 있는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선거에 나가게 되셨을 때 자금을 위해 그 집을 팔게 돼 우리는 이사했다. 그 집터에는 파칭코 가게가 생겼는데 나는 대학이나 회사에 가는 길에 전철 창문으로 그 파칭코 가게를 보며,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는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와지 역의 고가화가 시작되어 역 앞의 파칭코 가게와 내가 자주 놀던 상가들이 없어졌다. 우리 집이 있던 곳도 고가를 세우기 위한 콘크리트 기둥이 숲처럼 들어서 버려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 4월 삼촌이 96세로 돌아가셔서 그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식에서 친언니와 아와지 대저택의 시절을 함께 추억할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와 어머니밖에 안 남았다. 고모는 한신 아와지 대지진 직후에 돌아가셨고 나보다 젊었던 사촌도 13년 전 지주막하 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삼촌에게는 아와지의 생활을 함께 추억할 가족이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두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와 언니다. 하지만 96세의 어머니는 최근에 돌아가셨고 언니와 나도30 년 후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람들의 추억은 이렇게 차례로 사라져 가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가고 싶었던 교토의 우토로 마을에 갔다 왔다. 우토로에 사는 사람들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긴 투쟁 끝에 이들이 함께 살 아파트가 세워졌다. 올해 4월에는 평화기념관이 생겨서, 우토로 지구의 성립과 상수도 요구 및 토지 투쟁의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3층에는 제일 1세들의 생활과 지나온 역사, 그리고 이야기들이 있다. 전시 내용을 보고 재일 코리안들의 괴로웠던 생활을 알았다. 또한 이들이 다음 세대에 전하는 소원을 알게 됐다. 이런 추억의 계승은 소중한 것 같다.

  우리 집안에서도 어떤 계기가 생겨 어머니께서 패밀리 히스토리를 쓰셨다. 어머니의 글을 통해 우리 집안이 에도 시대의 히코네번의 사무라이 가계라는 것을 알았다. 다이쇼 시대에 태국에 부임한 외교관이 있었다는 것에는 역사를 좋아하는 조카는 감격해했다. 물론 전쟁 중의 체험도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일본 국내에만 계셨고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서의 가해 경험은 없으시다. 그래서 일본에 살며 겪은 전쟁 피해의 체험이지만 미군 전투기의 공습을 당했을 때에 조종사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일, 그리고 음식이 없어서 농가에 기모노를 주고 음식을 나눠 달라고 했던 일들이 적혀 있다.   우리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이 살아 계시는 동안 오사카 대공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젊은이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하시며 대공습 관련 사진집을 보여 주면서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 즉 전쟁 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이를 읽고 들은 젊은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전쟁의 비참함이 조금은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추억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면 안 될 추억도 있다. 나는 올해 여름 다카츠키 시에서 개최되는 ‘전쟁과 평화’ 전을 도우며 사라지면 안 될 추억을 전하고자 한다.

세키타 레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