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사정

  저의 생활은 모든 것에 있어서 뱃속 사정이 중심이 돼 움직여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까지, 아니 밤중이라도 안심 못 해요. 그래서 집은 저에게 가장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집을 지을 때도 배가 아플 때를 대비해서 현관문을 열고 바로 화장실이 나오도록 배치했지요. 가족들과 화장실 시간이 겹쳤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2층에도 물론 화장실을 마련했어요. 집은 뱃속 사정이 민감한 저에게 가장 안전하지만 계속 집에 있을 수는 없어요.

  일을 선택할 때는 업무 내용이나 대우, 인간 관계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 화장실 환경이에요. 첫째, 일하는 도중에라도 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환경인가? 둘째,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 셋째, 화장실은 깨끗한가? 넷째,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사용할 수 있나? 잘 따져 보아야 해요. 화장실 환경이 좋아야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전에 일하던 회사는 화장실 환경이 최악이었어요. 직장에는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남녀 공용이었어요. 위치는 휴게실 구석이었는데 점장님 책상 뒤에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몇 번이나 집의 화장실을 쓰기 위해 자전거로 달려가야 했어요. 지금은 이것도 그리운 추억 중 하나가 됐지만요.

제가 자동차 면허를 취득하려고 운전학원에 다닐 때의 이야기예요. 운전 교습을 받던 중에는 바로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더 긴장한 나머지 배가 아파서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어요. 그 덕분에 교습 첫날부터 모두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말았어요. 자동차 주행 연습이 있던 날에도 제 뱃속 사정은 확실히 인수 인계된 것 같았어요. 승차 시 안전 확인과 함께 매번 제 뱃속은 안녕한지, 안전 확인도 항목에 포함되어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 고마워요.”

  운전면허 시험 날이었어요.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제 배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허겁지겁 약을 먹었는데 때는 이미 늦어서 시험 도중에 손을 들고 화장실에 뛰어가야 했어요. 운전면허 학원에서 들었는데 운전면허 시험 중에 화장실로 뛰어간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대요. 보통의 경우라면 시험은 불합격 처리가 됐을 거예요. 하지만 제 뱃속 사정에 대해 인수 인계를 받아 파악하고 있던 분들 덕분에 별실에서 시험을 볼 수 있었어요.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고생 끝에 겨우 얻게 된 운전면허증. 바로 휴일에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제가 직접 운전을 해서 쇼핑을 하러 갔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한순간의 늦은 판단으로 뒤따르던 경찰차에 붙잡히는 일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 제가 차를 운전하는 일은 없어졌지요.

복잡한 뱃속 사정을 안고 있지만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좋아해요. 뷔페에 가면 여러 가지를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게는 전혀 활용 불가능해요. 배탈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 배와 상의해서 먹을 수 있는 것만 먹는 편이에요. 마음껏 먹기보다는 조금씩 여러 번을 먹다가 한 번씩 화장실에 뛰어가고, 다시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먹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다시 화장실로 뛰어가는 일의 반복이에요. 그게 저만의 뷔페를 즐기는 방법이지요. 제 뱃속 사정이 중심이 돼 있는 생활은 지인들에게도 걱정을 사는 경지를 넘어서 “또야?”라는 말을 듣고는 해요. 아니, 그걸 저도 즐기는 중인 것 같아요.

  뱃속 사정의 마지막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미있고 멋진 친구와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해요. 금방 배가 아파오는 것이 괴롭고 힘들지만 제 친구는 그걸 웃음으로 바꿔서 항상 주위를 즐겁게 해 줘요. 그 친구와 5년 전에 같이 갔던 한국 여행 때의 일이에요. 물이 바뀌면 배가 깜짝 놀란다고 2리터짜리 생수 3병을 여행 가방에 넣어서 한국에 갔어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요. “친구야, 코로나가 진정되면 또 물 많이 들고 한국에 놀러 가자!!”

구니사와 사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