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도서 : 82년생 김지영
1989년, 김지영 씨가 만 일곱 살이 되는 해에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성희롱 소송이 있었다. 보도 기자를 하고 있던 나는 지금부터 4년 전쯤, 이 재판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당시 원고였던 여성을 만나 인터뷰하기 위해 후쿠오카까지 갔다. 그 여성에 의하면 ‘섹슈얼 하라스먼트’(성희롱)라고 하는 미국에서 건너온 용어를 알게 된 것이 제소를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내가 고민해 온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그렇게 자신의 고민을 문제로 인식하게 될 때까지 그녀도 사회에서 여성이 참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시 남성의 생각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김지영 씨의 진료 기록부에 적힌 것과 같이 사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로 여성이 비난을 받거나 가정 주부를 ‘맘충’이라고 부르거나, 회사 모임에서 여성에게 ‘성형하라’고 하는 등의 문제는 지난 몇 년 동안에 크게 개선됐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도 성희롱을 포함하는 모든 괴롭힘이 발생하면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었다. 그리고 몇 명의 남성 사원이 처벌을 받는 일도 있었다. 여성 사원, 여성 관리직의 인원도 늘었다, ‘아빠’가 육아 휴가를 하는 것도 드물지 않게 됐다.
지영 씨의 고백으로 다시 한번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이런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된 것 같다고도 느꼈다. 그런데…
지영 씨를 진찰한 의사는 자신의 아내 역시 우수한 의사였지만 육아 때문에 경력을 잘 쌓아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이다. 그래서 여성이 처한 불우한 처지에 대해 꽤 이해심이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의사는 여성 동료가 출산을 위해 퇴직하게 된 후의 병원 일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육아 문제가 있는 여성 스태프는 여러 가지 곤란하니까 후임으로는 미혼자를 찾아야….” 세상이 개선되었다고 느꼈던 것은 남자인 나의 오만이며,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무거운 작가의 메시지에 나는 멍하니 책을 덮었다.
1989년 이전의 일본처럼 미래에서 지금을 본다면 이상하겠지만, 지금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상하다고 자각되지 않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여성, 아니 여성에게뿐만 아니라 성별, 국적, 종교 등 모든 사회적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상식을 미리 갖추고 지금을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쓰지 켄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