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도서 : 아몬드

파도 소리와 바람

  나는 얼마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BTS 멤버들이 읽던 책이기 때문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쥔 이 이야기는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아이.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를 나와는 다른 특수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사람과 만나고 변해간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을 감정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자신의 감정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윤재는 어머니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어떨 때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을 암기한다. 그리고 그는 침묵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침묵은 나도 자주 써버린다. 집단에 있으면 그 자리의 대세가 느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그런데 그게 안 될 때는 공감하는 척하거나 그 자리의 벽이 된 것처럼 침묵하고 지나친다. 그는 이 방법으로 집단 속에 녹아들 수 있었다. 하긴 타인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지만, 나는 침묵하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죽어 가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 초반 사건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윤재는 혼자가 되고 말지만 동급생과의 만남이 그를 바꿔간다. 곤이는 윤재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투명"한 남자아이다. 두 사람은 저마다 서투른 방식이지만 모르니 궁금해서 서로를 찾아간다.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는 건 그런 윤재의 대사다. 내가 뭔가를 알고 싶을 때 대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인터넷 검색이다. SNS에는 사람의 감정도 정보도 넘쳐난다. 하지만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나는 몇 줄의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 것 같지 않은가. 남들뿐만 아니라 내 마음조차도. 예를 들어 영화를 본 뒤 바로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해설을 읽곤 한다.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이라거나 "왜 저 인물은 저런 대사를 했나?"라고 정답을 찾는다. 다른 사람의 해석으로 그 작품을 이해한 기분이 들어 안심된다. 그런 답 맞추기 작업은 윤재 엄마가 훈련을 위해 만든 "희로애락 애오욕 게임"을 혼자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내 안에서 생겨나는 의문과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내게서 빼앗고 있다.

  이야기 후반, 윤재가 도라라는 여자아이를 만나면서 그의 마음 변화는 가속된다. 그때 그에게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파도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느껴져"고 목소리를 낸다. 나는 평소 윤재처럼 감정을 느끼는 적이 얼마나 있을까. 억지로 남에게 맞추는 것은 파도 소리나 바람을 무시하고 감정을 덮는 것이다. 태어난 자신의 감정에 남의 말로 억지로 이름을 붙였다가는 모처럼 찾아온 파도 소리 바람은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고 윤재는 말한다. 나는 내 안에 태어난 감정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자신을 향해 부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자. 그게 인간으로 사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다나카 이쿠미